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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론장

반간계
박광태 903/2022-07-03


역사인물전

비열하지만, 치명적인 계교, 반간계(反間計)를 어떻게 피할것인가?

김점권

2020. 12. 3. 11:59


모략에는 음모(陰謨)와 양모(陽謨)가 있다고 한다. 양모는 정공법에 해당되지만, 음모는 비열한 방법을 통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이라고 한다.'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음모, 양모를 가려가며 구사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통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습관적으로 음모를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비열하지만 현실적인 사항이다. 어떻게 하면 음모를 피할 수 있을까? 수단을 알아야 대응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음모 (陰謨) 중, 반간계 (反間計)는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치명적인 계교다.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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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질투, 무력은 아마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명철한 사람조차 조금만 실수하면 이러한 과오를 범하게 된다. 게다가 사리에 밝지 못한 군주나 지도자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반간계는 소문을 이용하거나 허위 정보 등의 수단으로 상대를 미혹시켜서 스스로 자신의 진영을 파괴시키는 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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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에서 반간계를 이용한 사례는 많다. 일찍이 2천여 년 전에 나타난 <손자병법>에서는 이미 반간계에 대해 논의하면서 계략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이는 반간계가 당시에 널리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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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과정 중, 반간계의 계략으로 승부의 저울추가 바뀐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지전)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반간계의 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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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수와 지모로 유명한 명작 <삼국지연의>에서는 갖가지 지략을 활용하고 있는데, 실로 정치, 군사, 외교, 인사 등 여러 영역에서 권모와 지모의 백과전서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반간계는 중요 순간마다 전세를 역전 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많은 사례 중 두가지를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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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조조의 일방적인 우세 속에서 이른바 제갈공명의 <삼국정립>의 계기가 되는 사건은 적벽대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군사적으로 절대 불리했던 오나라 주유의 적벽대전 승리의 분수령은 조조의 수군 대도독인 채모, 장윤을 제거한 반간계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난세의 간웅'이라는 조조가 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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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이번에는 조조가 반간계를 사용하여 적을 무찌르는 사건이다. 마초는 촉나라의 5대 장수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는 한때 서북지역의 패자였다. 조조는 마초를 제거하기 위해 출정했으나, 전투력이 뛰어난 마초와 그의 아버지의 전우인 한수 장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오히려 수세에 몰렸다. 조조는 결국 반간계를 동원하여, 마초와 한수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성공하여 서북지역을 평정하였으며, 마초는 도망가야 했다.

청나라 개국의 시발점, 반간계로 명나라 장군을 제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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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루하치 수하의 만청(滿淸) 부락은 초창기에는 문자도 없어서 한족(漢族)의 전통 서적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당시 구전으로 유행했던 소설이나 희곡 등을 통해 대충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삼국지연의>와 같은 권모술수에 관한 책을 선호하였으며, 청나라 장수들이 산해관을 넘을 때는 모두 이 책을 품에 지녔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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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누루하치가 산해관을 전진할 때 만난 강적은 명나라의 명장 원숭환이었다. '싸우면 이기지 않을 때가 없었고, 공격하면 함락하지 못할 요새가 없는' 누루하치는 원숭환이 지휘하는 영원 전투에서 장수와 병졸을 잃고 자기도 역시 상처를 입고 우울하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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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후손들은 원숭환을 제거하려고 총력을 다했으며, 결국 <삼국지연의 >에 등장하는 주유의 반간계를 상기하고, 소문을 날조하여 숭정 황제의 의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끝내 원숭환을 능지처참하도록 만든 것이다. 결국 명나라 스스로 만리장성을 제거한 셈이다.

전국시대 진(秦) 나라의 반간계로 조나라 50만 대군이 몰살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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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조나라의 백전 노장인 염파장군의 활약 때문에 작전대로 진격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때 진나라의 재상이자 책략가인 범수는 반간계를 통하여, 조나라 명장인 염파를 조사 장군의 아들인 조괄로 교체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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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간계의 수순은 간단하다. 먼저 대규모의 금전적 물량을 통해서 조나라 왕이 신임하는 신하를 매수하고, 다음으로 헛 소문을 퍼뜨려서 염파 장군을 조나라 왕이 못 믿게 만들며, 다음으로는 매수한 신하들이 염파를 탄핵하고 조괄을 추천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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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괄 장군은 아버지였던 조사 장군이 살아있을 때, 아들의 중용을 거부하였다. 이유는 '말로서는 천하의 병법을 모르는 것이 없지만, 현실 감각은 뒤지며, 가장 중요한 대장군의 자질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조나라 왕은 주변 충신들과 조괄 어머니마저 반대한 사실을 무시하고 조괄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결국 진나라의 반간계가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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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명약관화했다. 어리석은 조괄은 잘못된 군사 작전으로 본인도 죽고, 50만 대군이 포로로 잡혔으나, 결국 생매장 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조나라의 국운은 서산 낙조였다.

항우의 유일한 참모, 범증을 제거한 진평의 반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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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들은 종종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항우 옆에 범증이 계속 있었다면, 유방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만큼 범증은 초나라와 항우의 중요한 가신이자 일급 참모였다. 항우는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였기 때문에 주변에 참모를 많이 두지 않았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유방이 모든 인재를 포용한 것과 정반대인 셈이다. 하지만 항우 곁에 유일한 참모이자 아버지와 같은 대접을 받으며, 초나라의 모든 전략을 세웠던 범증은 한나라의 큰 골치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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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항우 밑에서 참모 역할을 하다 한나라로 도망 온 참모 진평은 유방에게 초나라의 일급 참모 범증을 제거하는 반간계를 건의했다. 유방은 과감하게 지원했으며, 결국 항우는 헛된 소문에 속아서 범증을 멀리했고, 실망한 범증은 항우 진영을 떠나게 된다. 이후의 진행 과정은 항우의 자살과 유방의 천하통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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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에 열거한 사례 말고도 역사적인 중요 과정에서 분수령이 되는 사건의 핵심은 '반간계'에 의한 내부 분열로 자중지란에 빠져 망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비열한 인간들의 이간질을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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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간계는 인간의 본성을 활용한 계교다. 즉 인간의 의심, 질투, 두려움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본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계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상과 시기를 잘 파악해야 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잘 구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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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상대의 반간계에 넘어가지 않은 역사적 사례도 많다. 그 핵심은 '한 번 믿으면 전부를 맡기고, 신뢰하지 않으면 중용하지 않는다'라는 철학으로 인재 등용 과정을 엄격히 해서 채용하고, 맡기면 신뢰하고, 주변의 참언이나 소문에 쉽게 동요하지 않고, 군주가 직접 소문의 내용을 신중하게 조사해서 냉철하게 결론을 내리는, 현명한 군주는 결코 반간계에 속지 않고 성공하였다. 보통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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